세계속 한국. 한국을 빛낸 이들

세계 명품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MCM 김성주 회장

maind 2009. 6. 26. 20:09

 

 

김성주 회장



세계 패션시장이 경기침체 여파로 매출 감소와 판매부진에 허덕이고 있지만 ㈜성주그룹의 김성주 회장은 누구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MCM 브랜드를 전 세계 36개국에 진출시키고 연 매출 2,000억원을 달성시키는 쾌거를 이뤄낸 그녀에게 불황은 큰 문제가 아닌 듯하다. 위기를 잘 이용한다면 기회가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뉴욕의 랜드마크(Land mark)라 불리는 플라자호텔 1층에 MCM 매장을 오픈해 화제가 되고있다.

하루를 일주일처럼, 일주일을 한 달처럼 일한다는 김성주 회장은 오늘도 빅백(Big Bag)을 어깨에 메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김성주 회장에게는 늘 슈퍼우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73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50대라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균형 잡힌 몸매하며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타고난 사업가적 마인드 등 그녀에 대해 일일이 다 열거할라치면 밤을 지새워도 끝나지 않는다. 김성주 회장은 항상 바쁘다. 한달 스케줄만 보더라도 살인적이다. 1년 중 반 이상을 해외에서 머물러야 하는 일의 특성상 한국에서 그녀를 만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운 좋게도 김 회장이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역삼동에 위치한 ㈜성주그룹 본사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마케팅

김성주 회장과 함께한 미국 영화배우 브룩쉴즈.

글로벌 패션 브랜드답게 직원들은 저마다 각자 맡은 파트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곳 직원들은 김 회장의 업무 스타일대로 일주일을 한달처럼 일한다고 한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여기에 있었다. ㈜성주그룹의 모든 직원들은 회사시간을 절대 헛되게 쓰지 않는다. 또 회사의 모든 시스템이 선진국처럼 체계적이고 정확하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여주는 업무 스타일은 수십 년간 유통업계에 몸담으며 터득한 김 회장만의 노하우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부터 연이은 미팅에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연신 미안해하는 김성주 회장. 인터뷰 내내 재치 있는 입담과 솔직담백한 모습으로 요즘 근황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아 한 시간 간격으로 미팅을 하고 있어요. 피곤하지 않으냐고요? 늘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걸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책도 보고 운동도하며 건강관리를 하기 때문에 언제나 힘이 넘쳐요.


워낙 세계 곳곳을 다니다 보니 그녀에게 짐 싸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큰 트렁크 하나들고 비행기에 오르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TV나 언론매체에 비춰진 김 회장은 좋은 집안 출신에 남부러울 것 없이 탄탄대로를 밟아온 듯 보이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눈물겹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끝없는 도전
그녀의 타고난 사업능력은 부친인 김수근 회장의 영향이 가장 컸다. 국내 최대 에너지기업인 대성산업의 4남 3녀 중 막내였던 김 회장은 어렸을 적부터 학문에 조예가 깊고 똑똑해 늘 또래 친구들보다 앞서있었다.

 

하루는 반에서 1등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랑스럽게 얘기하자 아버지는 도리어 화를 냈다고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똑똑하면 부유한 남편을 만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랬듯이 한국의 전통적인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에 따라 여자라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학업도, 사회활동도, 유산도 물려받을 수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22살의 나이에 정략결혼을 하라는 집안의 통보는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김 회장은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연세대(신학, 사회학)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명문대인 앰허스트(Amherst College)대 사회학과에 원서를 접수한 것이다.


"합격을 하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크게 노하셨어요.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시다 결국 손을 들어주셨죠."


학업에 대한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런던정경 대학(LSE)에 이어 하버드(Harvard Unive.)에 진학할 때도 아버지와의 싸움이 계속됐다.

MCM 행사장에 참석한 모델 겸 패셔니스타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집안에서의 모든 지원이 끊겨버린 김 회장은 돈을 벌기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 유명 백화점 기업인 블루밍데일즈(Bloomingdale's)에 입사하게 된다.

 

이곳의 CEO이자 마케팅업계의 전설적인 인물 마빈 트라우브(Marvin Traub)는 김 회장의 잠재능력을 알아보고 한국과의 거래를 담당해줄 매니저 역할을 해줄 것을 제안했다.

 

패션업에 전혀 경험도 없었고 영어실력도 유창하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리 없었다. 김성주 회장은 미국의 가장 큰 백화점에서, 그것도 소매업계의 거물인 마빈 트라우브 밑에서 직접 일을 배운 것이 마치 군대생활을 연상케 했지만, 사업을 함에 있어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이렇게 혹독하게 커리어를 쌓아 빠른 시일 내에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회복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녀가 대성산업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미국의 최대 자동차 부품 기업인 벤딕스(Bendix)사가 대성산업과 사업계약을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제안이었다.


"아버지께 직접 연락하기가 두려워 측근에게 의중을 물었더니 후에 아버지의 개인비서에게 직접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께서 그 사업에 관심이 있으니 제가 직접 통역을 해주면 좋겠다고요."


그 일을 계기로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된 아버지 김수근 회장은 계약을 성사시킨 보답을 하기위해 자신의 사무실에 김성주를 초대했다. "여자를 사무실에 초대한건 처음이었어요. 어머니도 사무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김수근 회장이 당신의 딸이기 이전에 김성주 회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다.

30만달러을 빌려 성주제국을 세우다
1980년대 후반 한국 정부는 외국 명품수입 규제를 없애며 경제자유화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유통업체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탐색 중이었고 이를 정확히 감지한 김성주는 아버지에게 30만달러를 원조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도움으로 1990년 자신의 기업인 ㈜성주그룹을 설립한 김 회장은 이브 생 로랑(Yves Waint Laurent), 구찌(Gucci), 소니아 리켈(Sonia Rykiel), MCM(Mode Creation Munich), 막스 앤 스펜서(Markes and Spencer)의 국내 독점 대리권을 따내면서 연간 총 9,700만달러의 매출을 이끌어내는 최대 규모의 패션 제국을 만들었다.


"사업 특성상 큰 규모의 모임이 많은 편이었는데 많은 대형 브랜드들이 제 출신과 배경을 보고 먼저 찾아와 한국 사업권을 돕겠다고 제안했죠."


이렇게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그녀의 활약이 정점에 달했을 때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성주그룹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외국을 자주 왕래했던 업무 탓에 타 업체들보다 먼저 금융위기를 감지한 김성주 회장은 재빠르게 구조조정을 감행했고, 막스 앤 스펜서와 MCM을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의 대리점을 모두 팔아 IMF를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다.

불황을 이겨낸 MCM의 성공전략

뉴욕 플라자 호텔에 오픈한 MCM 매장 전경

현재 성주그룹의 대표 브랜드인 MCM은 2005년 3월 ㈜성주그룹이 인수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유럽에서 호황을 누렸던 독일의 명품 브랜드 MCM은 김 회장이 공식적인 인수 작업을 통해 소유권을 넘겨받은 것이다.

 

이미 1994년도에 파산직전까지 내몰린 구찌(Gucci)를 인수해 3년 만에 40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세계 5위까지 끌어올렸던 경험이 있었기에 MCM을 다시 살리는데도 뭐가 가장 필요한지 잘 알았기에 자신 있었다. 김 회장은 노후된 디자인에 빛을 잃어가던 MCM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독일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미하엘 미할스키(Michael Michalsky)를 영입했다. MCM 디자인 팀과 함께 손잡은 미하엘 미할스키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클래식한 MCM의 전통에 스포티하고 모던한 감각을 불어넣어 젊은 층을 겨냥한 브랜드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해 11월 뮌헨에서의 재 런칭 발표를 시작으로 2006년 2월 , , , 등 세계적인 주요패션지의 편집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밀라노의 패션 위크(Fashion Week)에 데뷔했다. 이후 다수의 패션쇼와 이벤트를 통해 MCM브랜드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에 세계 각국 패션 관계자들이 비상한 관심을 표했다. MCM가방의 전 제품은 최고급 소재와 핸드메이드(Hand Made)작업으로 제작되며 제품의 우수성을 위해 한국과 유럽에 공장을 두고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뉴욕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플라자호텔 전경.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MCM은 현재 전 세계 36개국에 150여개의 매장을 오픈하여 연간 2,000억원의 매출을 달성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200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 패션 중심지에 진출하며 미국, 런던, 모스크바, 아테네, 베를린, 베이징, 태국 등에 부띠끄 매장을 오픈했다.


또한 지난 11월12일에는 뉴욕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플라자 호텔(Plaza Hotel) 내에 단독 직영매장을 오픈하면서 상류층 겨냥에 나섰다. 1969년 국립 역사 건축물로 지정된 플라자 호텔 오픈행사에는 영화배우 브룩 실즈, 영화감독 우디 앨런, 유명 백화점 업체 삭스 피프스의 테런 셰프 부회장 등 평소 김 회장과 절친했던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 외에도 지난 5월 런던에 오픈한 플래그쉽스토어를 시작으로 뉴욕, 뒤셀도르프, 마카오 등 전 세계 주요도시에도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다.


김성주 회장은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 미국 Working Women의 '2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기업인', Asia Week(HK)지의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7인', 'CNN 'People's Choice Best of Asia의 New Century Leader, Wall Street Journal의 '주목해야 할 여성기업인 50명',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선정한 '자랑스런한국인대상'에 뽑히는 등 세계적인 기업인으로 명성을 떨쳐오고 있다.


세계적인 여성 기업가 김성주 회장, 운명을 거스른 한국인 특유의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성공, 특히 사회 환원에 앞장서서 이바지하는 그녀의 선행이 더욱 아름답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정경뉴스    이아롬기자 allang20@mjk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