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인이면서 코스모폴리탄"
재일동포 3세의 뿌리찾기 고뇌
(공주=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부모님도 한국말을 전혀 못하시고 저도 일본말만 하고 자랐지만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한국말을 하는 차세대 동포들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지금은 고베에 살고 있다는 이의(李毅.34)씨. 일본 이름은 시노부.
재일동포 3세인 그는 2009. 7월 13일 공주대학교에서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Okta)가 진행하는 제7회 차세대 무역스쿨 모국방문 교육에 참가한 28개국 동포 자녀 93명 중 한 명이다.
모국방문 교육 나흘째인 10일 그와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인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그가 한국을 찾고 조금씩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뜨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은 우연이지만 필연인 듯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 씨와 마찬가지로 재일동포 3세인 어느 선배가 서울 홍익대학교에 진학해 한국말을 배우고 재일 민단에서 실시하는 동포 자녀 모국방문 프로그램의 조교로 활동하는 것이 멋있었단다.
"그냥 일본말과 한국말 2개 국어를 하는 선배가 멋있어 보였습니다. 한국말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뭔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씨는 선배와 마찬가지로 한국 유학을 결심했고 1995년 국제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한국어 연수를 거쳐 1996년 국민대에 입학했다.
2000년 졸업한 뒤 현대전자를 거쳐 일본의 보안시스템 회사에 들어가 3년여 기간(2003-2006) 한국 주재원으로 일했다. 이 때 역시 재일동포 3세로 한국에 유학 온 아내를 만나 2004년 결혼했다.
"아내를 한국에서 만난 것도 참 묘한 인연이었습니다."
요즘 재일동포 3세끼리 결혼하는 예는 거의 없단다. 일본인이나 제3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신은 회사 주재원으로, 아내는 유학생으로 한국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것이다.
그러다 2006년 말 그는 선배가 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갈 기회가 있었다.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사는 동포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힘을 얻었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인이면서도 일본인처럼 살아가는 재일동포들과 달리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웠고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단다.
이후 이 씨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올해 4살난 아이는 또 어떻게 살아갈까로 이어졌다.
차라리 일본인으로 귀화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국으로 가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일본인으로 귀화하기는 싫고 한국으로 와 살기는 너무 힘들것 같다'는 것.
"이제는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의 선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코스모폴리탄'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여동생은 대만인과 결혼해 그 곳에서 살고 있고 처형은 미국에 유학 온 화교와 결혼해 홍콩에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동생네가 하는 네일샵 경영 자문을 위해 대만으로 갈 겁니다. 어쩌면 그 곳에서 사업을 할 수도 있어요."
이번 차세대 무역스쿨에 참가한 90여명의 한인 청년들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바로 그것이란다.
"끼리끼리는 싫어요. 한국인들끼리만 모여 뭘 해보자는 식이 아니라 각지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제 일을 해야지요."
결국 재일동포 3세인 이 씨가 찾은 고국은 한국 땅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 동포들의 거대한 네트워크였다.
그가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탄의 행복'이 한국 또는 일본에 안주할 수 없는 이들이 겪어야 할 또 다른 디아스포라(이산.離散)의 구실이 아니라 한민족이 지향하는 열린 민족주의로 가는 이정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SNR미디어 김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