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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 나눠온 정애리의 끝없는 사랑

maind 2009. 7. 20. 23:06

 

 

“해외 후원 아동만 206명… 앞으로 200명 더 늘리고 싶어요.
버겁게 나누자는 것이 제 주의거든요”

탤런트 정애리가 베트남 흐엉호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간 세계 수많은 곳으로 봉사를 다녔지만 고통을 마주 대하는 일에는 무뎌지지 않은 듯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4시간 넘게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흐엉호아.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으나 농업생산량이 낮고, 지역 주민 중 절반이 강이나 더러운 물웅덩이 등 깨끗하지 못한 식수에 의존해 살아간다. 더욱이 산악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마을에는 과거 내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화장실도 갖추지 못한 집에서 대부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난 20년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손을 내밀어온 탤런트 정애리가 지난 5월 22~27일 월드비전 친선대사 자격으로 이곳에 다녀왔다. MBC-TV 주말드라마 ‘잘했군, 잘했어’ 촬영으로 바쁜 일정 중 겨우 짬을 낸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대화해


정애리는 가장 먼저 열한 살 난 호반반 가족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호반반의 아버지는 전쟁 폐허 지역에서 일을 하다가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고, 그 충격으로 할머니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이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은 어머니가 짓고 있는 작은 규모의 쌀농사가 전부. 소년은 할머니를 돌보며 농사일을 돕다 보니 학교는 그만둔 지 오래다.

“힘든 상황을 보는 건 항상 마음이 아파요. 이번 방문에서 호반반의 할머니가 가장 가슴에 남아요. 달력도 시계도 없는 집에 살기 때문에 자신의 나이도 잘 모르시는 분이었어요. 나이를 물어보니 호적 기록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몸은 늘 사시나무 떨 듯 떨고, 항상 집 난간을 붙잡고 땅을 쳐다보고 계셨죠.”

할머니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마음을 열고 손을 잡으니, 할머니는 해묵은 아픔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몇 단계 통역을 거쳐서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드님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하며 손을 잡아드렸죠. 그런데 그때까지 아무 표정이 없으셨던 분이 갑자기 땀을 흘리면서 눈물을 쏟으시는 거예요. 할머니의 외로움이 제게도 전해져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요.”

정애리는 할머니와 함께하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더라도 통역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할머니 어깨를 주물러드리면서 ‘시원하세요?’ 했더니, ‘어’ 하시더라고요. ‘여기요?’, ‘괜찮으세요?’ 계속 한국말로 했는데도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한참을 대화했어요.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대화한 것 같아요.”

 

 

 

이미 세계 월드비전을 통해 205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는 정애리는 이번 방문을 통해 한 명의 아동을 후원 명단에 추가했다. 이제 일곱 살인 호치메는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과 살고 있지만 부모님은 남의 집 농사를 도와 얻는 쌀로 겨우 연명한다. 이마저도 모자라 땅을 파서 쥐를 잡아 팔아 생활하고 있다.

“하루에 두 끼를 겨우 해결하더군요. 그나마 그 끼니도 밥과 소금, 그리고 주변에서 뜯는 채소가 전부였어요. 아이 부모는 네 남매를 먹이기 위해 점심을 거르기도 하고요. 작은 개울에서 식수를 해결하는데, 굉장히 지저분한 물이에요. 가끔 물이 불어나는 계절에 아이들이 피라미 같은 물고기나 참게를 잡는데, 이게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더라고요.”

“식구들이 밥 잘 먹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하는 호치메의 아버지는 아이들 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호치메의 막내 동생인 9개월 된 갓난아이는 부모가 모두 일을 하러 나가면 어린 세 남매의 손에 맡겨진다.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해 울어도 아이들은 딱히 달랠 방법이 없다. 정애리는 이번 방문에서 아이들의 일일 부모가 되었다. 배고픈 아기에게 바나나를 으깨 주었고 우는 아이를 업어 달래기도 했으며, 아이들과 물웅덩이에서 식수를 길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간 옷이나 스케치북, 색연필, 멜로디언 등을 선물했다.

“어떤 선물을 가져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멜로디언을 생각했어요. 그동안 옷을 많이 선물했는데, 멜로디언은 처음이거든요. 피아노나 멜로디언 같은 악기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꺅꺅거리며 다 넘어가더라고요(웃음). 소리가 나니까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났어요.”


엄마보다 마음 씀씀이가 더 큰 딸


정애리가 봉사를 시작한 건 20년 전, 방송 촬영 차 서울 노량진에 있는 ‘성로원 아기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촬영이 끝나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저처럼 정말 다시 온 사람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알리지 않고 혼자 다니자는 마음에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며 버틴 게 8년 쯤 된 것 같아요. 그러던 중 방송에 나가서 한 번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후 굉장히 많은 분이 동참하고, 후원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생각을 달리했어요. 나 혼자 편하고 좋으려고 봉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알리는 건 아직도 편치 않아요.”

성로원 아기의 집 봉사활동은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현재 성로원 이사직까지 맡았다.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예쁜 아이, 깨끗한 아이에게 눈이 가는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픈 아이,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아이에게 가장 먼저 눈이 가더라고요. 처음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좀 더 아이들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거든요.”

국내 아동들을 도와온 정애리가 해외 아동들에게까지 사랑을 나눠주게 된 건 2004년부터다. 도움의 손길이 잘 닿지 않은 곳에 관심을 갖다 보니 월드비전을 알게 되었고, 이후 그녀가 나눔으로 할애하는 시간과 정성은 두 배로 늘어났다. 도움이 필요한 세계 여러 곳을 방문하다 보니 결연 이후 두 번 이상 만난 아이들도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만난 아이가 두 번째 만남에서 새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반군의 아이와 정부군의 아이를 차례로 낳은 뒤 아이 셋을 데리고 도망쳐 나온 18세 소녀가 있었어요. 살 곳이 필요한 아이였죠. 그 아이에게 집을 지어준다고 약속하고(돈은 정애리가 지불했다), 집이 완성되는 건 못 보고 한국에 왔는데, 1년 반 만에 그곳에 다시 가게 되었어요. 동네에 제일 예쁜 집이 있더라고요. ‘저 집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 집에서 그 소녀가 뛰어나오는 거예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안정된 모습이었어요. 친정엄마가 된 심정으로 아이와 껴안고 울었어요.”

 

 

 

정애리는 딸 지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봉사를 다녔다. “엄마는 나보다 딴 사람을 더 사랑해?”라고 말하던 어린 딸이 자라서 이제는 자신보다 마음 씀씀이가 더 낫다고 한다.

“정선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드린 적이 있어요. 그분들은 살길이 막막한데, 연락 끊어진 지 오래된 아들이 주민등록상에 있다는 이유로 정부지원금도 받지 못하시더라고요. 딸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럼 엄마가 실종신고를 해주고 왔어야지’ 하더라고요. 솔직히 그 생각은 못했거든요. ‘네가 나보다 낫다’ 했죠.”

지현이는 어려서부터 남을 도와온 엄마를 보고 자라온 덕분에 남을 위하는 마음의 품이 넉넉하다.
“때로는 제가 손쓸 수 없는 국제 문제까지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해요. 특히 노인들이 방치된 뉴스에 안타까워하고요. 어쩌다 제가 친정엄마한테 말을 툭 던지기라도 하면, 중간에서 제게 뭐라고 하기도 하죠. 친구들 사이에서도 상담을 곧잘 해주더라고요. 아직 어리지만, 이쪽(복지) 일을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봉사로 보람과 기쁨은 기본, 오히려 보너스 얻어


이제 정애리가 후원하는 해외 아동만 해도 206명이 되었고, 그 밖에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상당하다. 4년 전 발간한 「사랑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의 인세도 모두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해외 봉사를 다니다가 집이 필요하거나 가축이 필요하다면 그 자리에서 필요한 돈을 기부하곤 했다.

“경기가 한참 안 좋을 때였는데, 후원 아동을 100명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울수록 가장 힘들다고 할 때 더 벌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100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복지 단체에 전화하는 게 차일피일 미뤄지는 거예요. 그러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돼’라는 생각에 전화했더니, 그 사이 한 아이 후원금이 한 달 2만원에서 3만원으로 늘어난 거 있죠. 결심했을 때 바로 하지 않아서 더 많은 돈을 쓰게 되었네, 생각했죠(웃음).”

정애리가 이제까지 해마다 기부금으로 쓴 돈은 1억원이 항상 넘었다. 이제까지 누적된 기부금만 해도 기부천사로 알려진 이들보다 많을 듯하다.

“제가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일해서 버는 돈은 같이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누고 남은 돈에 맞춰 생활하면 돼요. 물질이 저한테 머무르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전달자 입장에서 파이가 크면 클수록, 부스러기가 크고, 그 부스러기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거든요.”

 

 

 

정애리는 봉사를 하면서 감사함과 미안함이 더 늘었다. 주어진 환경에 대한 고마움과 귀중하게 느끼는 마음이 커진다.

“평소에는 제가 살이 쪘다고 느끼지 않는데,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가녀린 팔다리를 보면 ‘내가 너무 뚱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제가 5천원짜리 밥만 먹고, 스타벅스 커피를 안 마시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커피는 제가 타 먹을 수도 있고 자판기 커피도 충분히 좋죠. 돈을 함부로 쓰려고 하지 않게 되고 정말 감사히 생각하게 돼요.”

정애리에게 봉사란 ‘보너스’다. 사랑을 나누다 보면 더 큰 사랑으로 돌아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아이에게 그 이상의 기쁨을 충분히 받잖아요. 저도 나누면서 굉장히 많이 채워짐과 기쁨을 느껴요. 거기에 보너스로 사람을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되죠. 힘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면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정애리의 사랑은 하나가 아니다. 그녀의 향기는 동료들에게까지 퍼지고, 또 다른 나눔을 낳고, 또 낳는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함께 출연했던 이훈은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고,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서 모녀지간을 연기한 ‘소녀시대’의 윤아는 후원자가 되었다. 이 밖에도 이유리, 박탐희 등 많은 후배 연기자들이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그녀의 가슴속에 자라고 있는 나눔의 소망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주변에서는 복지재단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하지만, 저는 자원봉사자가 좋아요. 앞으로 비전이 있다면 파양당한 아이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요즘 입양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압양에 관한 문의 전화가 1건이면, 파양이 3건이래요.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더 큰 사랑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아이들을 모아서 그룹 홈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해외 후원 아동은 500명까지 늘리고 싶네요.”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애리를 만나고 싶다면 연예인들이 잘 모이는 행사장이 아닌, 봉사 현장에서 찾으라”는 말이 있다. 기자도 1년 전 겨울, 사랑의 연탄 봉사 현장에서 웃으며 연탄을 나르고 있는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나눔은 버겁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정애리. 항상 가진 것이 적다고 불평하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레이디경향 2009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