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서 10년만에 CEO 된 고환택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정우철강(주). 직원은 8명뿐이지만, 정우철강은 설립 10년 만에 40억원의 연매출을 올릴 정도로 내실 있고 튼튼한 회사다. 이 회사를 설립, 운영해온 사람은 바로 IMF 당시 집과 공장까지 경매로 빼앗기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면서 궁지에 몰렸던 고환택(50) 대표다. 지난 10년 동안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맨손으로 시작한 신용불량자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IMF 한파에 집과 회사 하루아침에 경매로 날려
하지만 이 같은 사업 확장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IMF 한파와 함께 한보철강이 부도가 나면서 거래처였던 고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까지 연쇄 부도를 맞았다. 이로 인해 그는 경매로 집과 공장을 한꺼번에 빼앗겼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CEO라는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로 전략하자, 주위 사람들의 태도 역시 곧바로 변했다. 평소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던 일부 직원은 손을 흔들면서 “어이~, 요즘 어렵지?”라고 거들먹거리며 말을 건넸다.
“그 당시 심정은 참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벌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내 안에 나도 모르고 있던 자신감이 살아나더군요.”
고 대표는 회사와 집을 경매로 빼앗기고 나서도 오히려 부도를 맞은 거래처 직원을 찾아가 술과 점심을 사주며 위로를 했다. 또 경매로 공장을 넘기면서 “돈 많이 벌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고 대표 본인도 의아할 정도다.
그가 위기상황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건 어릴 때부터 혼자 살아온 덕분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을 하든지, 주위 도움 없이 혼자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배웠죠. 결혼할 때도, 사업할 때도 혼자 해왔어요. 스스로 내 인생을 끌고 가다 보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걸 이겨내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웃음).”
계약서만 들고 발로 뛰면서 거래처 뚫어
“우선 주위에 내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아이들과 부모님도 모르고 있었죠. 기존의 거래처에 계약서를 들고 쫓아다니면서 ‘선급금’을 달라고 했어요.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할 계획인데, 나한테 원자재를 대주면 언제쯤 돈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설득했어요. 일일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간절히 호소했더니, 일부 업체에서 제 눈빛을 보고 계약을 하더라고요.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기회는 있구나 싶었죠.”
계약서를 들고 다니면서 원자재와 부자재를 구입하고 하나씩 공사를 해나갔다. 당시 계약을 맺었던 거래처들은 지금까지 최고의 협력업체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협력업체들은 고 대표가 계약서만 달랑 들고 찾아왔던 그때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건네곤 한다고.
1997년 신용불량자가 된 고 대표에게는 3억원의 빚도 있었다. 당시 그의 꿈은 빚을 청산하는 것이었다. 또 신용불량자 신분에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 해외 출장을 제외하고는 출근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했다. 게다가 지난 3년 전부터는 그동안 하고 싶던 대학원 공부도 하고, 올 2월에는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을 텐데 학교 공부까지 병행하다니….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다 해낼 수 있었을까.
“원래 한가한 사람한테는 시간이 없고, 바쁜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는 법이거든요.
회사와 학교 수업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죠.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봐요.”
게다가 그 사이 태권도 2단 단증을 따기도 했다. 태권도 관장은 나이가 쉰 살이 다 된 사람이 태권도를 배우러 오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고 대표의 열정에 감동해 열심히 지도를 했다고 한다.
“대학교 다닐 때 태권도 초단을 땄는데, 그걸 30년 동안 우려먹었잖아요. 요즘은 수명이 연장돼서 오래 사니까 앞으로 20~30년을 더 일하려면,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몸의 컨디션도 재정비하고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2단 단증을 땄더니 몸이 하나도 안 아플 것 같고 무슨 일을 해도 자신 있게 달려들 것 같아요.”
‘40대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고 대표가 신용불량자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다양하고 바쁘게 살아온 것은 50세가 되기 전, ‘40대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40대에 공부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몸도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책까지 써내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는 목표대로 학교를 다니면서 박사학위도 땄고, 태권도 2단 자격증도 추가했다. 그리고 ‘40대 아름다운 마무리’의 마지막 목표가 바로 책을 내는 것이었는데, 그 책도 지난 1월에 출간했다.
“책을 통해 그 동안 내가 겪었던 어려움이 무엇인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어떤 꿈을 갖고 살아왔는지, 왜 실패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잖아요.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면 얼마나 보람 있겠어요. 어려움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그동안 ‘철’에 관련된 사업을 통해 실패도 하고, 성공도 했다. ‘철’은 그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이에 책 제목도 「철든 놈이 성공한다」로 지었다. 하지만 정작 고 대표 스스로는 “앞으로 철들려면 멀었다”고 말한다.
“제 경영 철학은 ‘펀(FUN) 경영’이거든요.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을 해야 무슨 일이든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일을 해야 신나고, 행복하니까요. 그래서 직원들 앞에서도 항상 푼수 같은 행동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 아직 저는 철이 덜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웃음이 가득한 회사 분위기 덕분일까. 회사 직원 8명은 모두 자신이 CEO인 것처럼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직원이 설립 초기 멤버이기 때문에 함께한 기간이 10년이 넘는다. 얼굴 보는 시간이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셈. 얼마 전 휴일에 회사를 나가봤더니, 직원들이 다섯 명이나 나와서 일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집에 좀 들어가라고 오히려 성화를 했단다.
“사장 몰래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는 소리, 들어보셨어요? 저희 회사가 그래요. 제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아시겠죠? 직원들이 바로 저의 라이프 코치예요. 모두 회사를 내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무리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온다고 해도 우리 회사는 끄떡없을 거예요(웃음).”
위기일수록 꿈을 크게 갖는 것이 중요
“사람들이 나에게 ‘언제 가장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지난 10년을 꼽겠어요. 빚 3억원을 갚기 위해 힘들지만 앞만 보고 달려올 수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이 가장 아름답고 벅찬 시기였던 것 같아요.”
2007년 12월 24일, 고 대표는 만 10년 만에 신용불량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같이 고생해준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부도와 경매의 위기 속에서 꿋꿋하게 옆자리를 지켜주고, 마음속으로 응원해준 아내, 그리고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난 뒤,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꿈이 있었기에 행복했는데, 더 이상 이룰 꿈이 없다는 생각에 허탈함과 허무함에 빠진 것.
“IMF 때도 생기지 않았던 우울증이 와서 저 자신도 깜짝 놀랐어요. 신용이 회복되고, 더 이상 올라갈 목표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우울증에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다시 경기가 나빠졌잖아요. 새로운 꿈과 목표가 생기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났어요.”
그가 생각한 새로운 꿈은 바로 세계 일등 기업이 되는 것. 요즘 같은 경기 불황 속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제품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여보겠다는 포부다. 지금 같은 금융 위기가 아니었다면 미처 생각 못했을 꿈이었다.
“지금까지 저 자신을 너무 저평가한 것 같아요.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큰 꿈을 가졌다면, 더 빨리 유익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먹고살기 바빠서 미처 그런 생각조차 못한 것 같아요. 꿈을 갖는 건 자유잖아요. 돈 드는 일도 아니고. 70세가 됐을 때 지금 내가 세운 계획이 얼마나 실현돼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고 궁금해지네요(웃음).”
20년 뒤 이루어야 할 꿈이 생긴 고 대표는 “경제 위기에 지친 사람들도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아마도 20년 뒤 고 대표의 사무실 명패에 ‘Dream Bank’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을까.
레이디경향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