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바다의 보석, 흑진주 양식기술
연 1조원 시장에 도전장 낸 한국해양연구원
흑진주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8톤이 생산, 1조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큰 시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흑진주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바로 이 시장에 한국해양연구원이 도전장을 냈다.
흑진주 양식 연구개발을 주도한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 박흥식 박사는 “우리 연구진이 남태평양에서 양식개발에 성공한 흑진주는 80억 원에 이르는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생산시장 개척을 통한 인력 고용증대, 국제 거점 확보, 국가 홍보 등 다양한 부수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원천기술 확보로, 조만간 무려 30년이나 뒤처진 후발주자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기술분야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10년 전부터 시작한 연구개발
흑진주 양식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의 역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1998년 한·일어업협정으로 해양 및 수산 분야에 국민의 관심이 일자, 정부에서는 해양 분야의 ‘대양 진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 알을 제거하는 기술, 핵에 붙이는 세포부위를 선택하는 기술, 알주머니를 절개해 핵을 넣는 기술이 흑진주를 생산하는 중요 요인이 된다.
그 일환으로 2000년 5월 마이크로네시아연방공화국 축주(Chuuk State)에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를 설립했다.
그 과정에서 축주는 우리 정부에 흑진주 양식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해양연은 2000년부터 연 2억 원 규모의 흑진주 생산 연구를 수행했다.
해양연은 흑진주조개 자원양을 파악한 결과, 자연에서 수확한 조개로는 흑진주 생산의 경제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조개 양식부터 추진했다. 흑진주를 만들려면 원하는 크기의 원형 핵에 패각을 만드는 세포를 잘라 붙인 후 살아 있는 조개의 입을 벌려 흑진주조개의 알주머니에 삽입하는 수술을 거쳐 2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이때 알을 제거하는 기술, 핵에 붙이는 세포부위를 선택하는 기술, 알주머니를 절개해 핵을 넣는 기술이 흑진주를 생산하는 중요 요인이 된다. 수술을 마친 조개는 대부분 후유증으로 죽거나 삽입한 핵을 뱉어버린다. 핵을 삽입한 후 생존율은 약 20%에 불과하다. 따라서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장기간 생존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흑진주를 생산하는 것이 연구진의 최대 목표였다.
“생물산업은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그런데 당시 정부에서는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2003년부터 흑진주 생산은 사업에서 아예 배제되기까지 했습니다. 3년여 간 기초연구만 수행한 셈이죠.”
박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연구진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흑진주와 관련한 각종 정보와 시장 흐름을 모니터링하면서 새로운 로드맵을 작성했다. 한쪽에서는 진주를 생산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기존 연구방향을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2006년에 연구를 재개했다. 하지만 흑진주 생산기술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관련 연구자료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다. 삼고초려 끝에 일본에서 퇴역한 전문가를 설득해 기술 자문을 받으며 되도록 빨리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속성 성장’ 방식을 고안했다.
생산기간 30% 단축, 고품질 흑진주 생산
▲ 진주는 원형의 광택을 가져야만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30개월의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겪었다시피 3년여 기간은 우리 정부가 기다려 줄 수 있는 한계점이라는 생각에, 속성 성장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진주는 원형의 광택을 가져야만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 우선은 알주머니가 비어 있어야 하며, 핵 삽입을 위해 절단부위 선정에 유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조개의 항체 연구에 돌입했고, 생리 특성과 생활사를 파악해 강제 생식소 조절방식을 개발했다. 또 건강도를 평가하는 지표를 선정해 핵의 크기와 삽입시기를 선정함으로써 진주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20개월로 단축했다.
2006년 11월 조개에 핵을 삽입하고, 바다에 다시 돌려보낸 다음, 거의 매일 잠수를 해 마치 어린 아이 돌보듯 조개를 관찰했다. 연구진은 진주를 수확하는 디데이(D- DAY)를 핵을 삽입한 지 20개월이 되는 날로 정했다. 이는 흑진주 양식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일본이 타히티에서 수확하는 기간보다 1년이 앞선 것.
안타깝게도 총 1천300여 개의 조개 중 300여 개가 죽었지만, 이 중 300개를 우선 수확했다. 한 개, 두 개씩 조개를 열자 흑색, 녹색, 금색의 다양한 진주가 나타났다. 흑진주는 검은색이어야 하는데…. 연구진은 진주가 생산되는 기쁨보다 품질에 대한 염려가 앞서기 시작했다.
130여 개의 진주가 하얀색 도가니 위에 놓였다. 연구진의 귀는 일본 전문가의 입으로 향했다. 진주를 수확하는 동안 침묵했던 전문가는 “20개월에 어떻게 이런 색이 나올 수 있는지 놀랍다”며 “앞으로 우리도 흑진주 생산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쯤 기술이전 계획
생물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과의 싸움, 그리고 고른 품질 유지다. 연구진은 생산기간을 무려 30%나 앞당기고, 짙은 녹색의 고품질 흑진주를 상당량 생산함으로써 흑진주 대량 양식에서 중요한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흑진주 조개 치패(어린조개)에서 흑진주 삽입 크기까지 전 생활사를 조절하는 생산시스템과 우량 모패(산란용 치패)의 건강성 평가를 통한 속성 생산기법 등이 기술의 예다.
▲ 마이크로네시아 연방에서는 국가 차원의 흑진주 생산 프로젝트를 기획해 우리나라와 협동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후 마이크로네시아 연방에서는 국가 차원의 흑진주 생산 프로젝트를 기획해 우리나라와 협동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등 태평양 국가에서도 기술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기술이전에 관심을 나타내며 현지 방문을 통해 신속한 사업화 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해양연에서는 현재 생산량에 대한 경제성 평가 및 기업 규모의 사업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내년쯤 기술이전을 할 계획이다.
“흑진주 생산은 이제 시작입니다. 속성 생산을 통한 진주의 강도 평가, 색깔의 인위적 조정, 15미리미터 이상의 대형 흑진주가 생산된다면, 1조 원의 흑진주 시장뿐 아니라 부수적으로 가공산업, 유통망, 액세서리 설계 등 기타 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진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조개를 통한 최초의 흑진주 생산은 3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진주 기술자가 타히티에서 흑진주 생산에 성공하면서 현재, 흑진주 생산량의 95%를 타히티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연구진이 생산한 흑진주가 색상과 외형에서 모두 품질이 좋고, 2010년부터 15미리미터급 고부가가치의 흑진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된 만큼 흑진주 시장에 대한 우리의 미래는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