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종류 및 진주에 대하여

보석으로의 전환, 바로크 장신구

maind 2007. 5. 9. 00:04
 

진주중에 바로크(Baroque) 진주라는 것이 있다. 구형이 아닌 불규칙하게 일그러진 진주를 일컫는다. 그런데 유럽의 예술 사조를 보면 바로크 양식이라 불리는 사조가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완벽한 균형과 조화미를 추구했던 르네상스! 그러나 16세기 말부터는 이것에서 벗어나 보다 파격적이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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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그림 1>은 당시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바로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램브란트의 자화상으로 전혀 감추거나 이상화시키지 않고 말년의 주름 하나까지도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파산 후의 비애와 불굴의 의지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극적인 표현, 풍부한 장식, 격심한 감정표현이 특징인 이 새로운 움직임을 사람들은 바로크라고 불렀다.

르네상스 예술을 구형 진주에 비교한다면 바로크 예술은 울퉁불퉁한 바로크 진주와도 같았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바로크 예술이 번성할 때 여성들 역시 진주를 애용했다.


<그림1>에서처럼 깊게 판 네크라인에 머리모양도 엄격함에서 벗어나 어깨까지 부드럽게 내려뜨리고 진주로 한껏 치장한 모습이 1630년대에 가장 유행했던 스타일이었다

짧은 진주 목걸이에 커다단 드롭형 귀고리, 진주줄로 꾸민 머리 장식 등 이 시기에는 진주를 풍성하게 착용하면 할수록 유행의 첨단에 서는 것을 의미했다. 진주가 워낙 유행하다보니 파리에서는 모조진주제조법에 대한 특허가 나올 정도로 관련 산업이 번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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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에서처럼 깊게 판 네크라인에 머리모양도 엄격함에서 벗어나 어깨까지 부드럽게 내려뜨리고 진주로 한껏 치장한 모습이 1630년대에 가장 유행했던 스타일이었다.

짧은 진주 목걸이에 커다단 드롭형 귀고리, 진주줄로 꾸민 머리 장식 등 이 시기에는 진주를 풍성하게 착용하면 할수록 유행의 첨단에 서는 것을 의미했다. 진주가 워낙 유행하다보니 파리에서는 모조진주제조법에 대한 특허가 나올 정도로 관련 산업이 번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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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이 외에도 인도산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의 수입이 증대되면서 <그림 3>과 같이 보석을 추상적으로 균형 있게 무리지어 배치하는 등 보석 본래의 가치를 살리는 장신구로의 디자인 전환도 이루어졌다. 바로크 장신구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모티브는 보우(Bow)라고 하는 리본형으로 <그림 4>를 보면 성인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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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네덜란드의 가족 초상화인데 어머니는 보우 전체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하였고 딸들은 리본 아래에만 보석을 달았다.

특히 리본의 양고리부분이 아래로 늘어뜨려진 경우에는 ‘세비네(Sevignes)'라 부르는데 이러한 명칭은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의 애첩이었던 마담 세비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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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그림 5>는 그녀의 모습으로 가슴 가운데에 리본 모양의 브로치를 장식하고 있다. 세비네의 인기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외에 유행했던 모티브로는 꽃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식물학 연구가 발달하고 이국적인 꽃들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꽃은 부유층의 호기심과 사치성향을 자극하는 대상이자 미술가와 장인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특히 터키에서 들여온 튤립은 역사상 최대의 꽃 투기 사건까지 일으킬 정도였다.

이러한 당대의 관심을 반영하듯 장신구에도 튤립이나 백합, 장미 등이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이렇게 바로크 장신구는 뒤에 이어질 본격적인 다이아몬드 시대를 예비하는 훌륭한 가교역할을 했다.



홍지연

홍지연 앤티크주얼리연구소장

FGA, GG-GIA, M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