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로 부조니 콩쿠르 1위, 뮌헨 콩쿠르 1위 없는 2위 등 화려한 기록을 세운 피아니스트 서혜경. 그녀가 힘겨운 암 투병을 끝내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제 그녀는 최고가 아닌 최선의 연주를 들려주고자 한다.
1년 전 피아니스트 서혜경(48)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무대에 섰다. 유방암 선고를 받은 직후였다. 수술이 시급하다는 의사의 말을 뒤로한 채 그녀는 예정대로 일본 순회 연주에 나섰다. 도쿄, 고베, 호카이도로 이어지는 공연은 일치감치 매진이었다. 열정적인 연주는 까다로운 일본 청중을 사로잡았고, 그녀는 무대 뒤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눈물을 훔쳤다.
“유방암을 발견했을 때 이미 겨드랑이까지 전이된 상태였어요. 암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48시간 동안 1분 단위로 설사를 했죠. 부모님은 암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셨어요. 그 상태로 일본 공연을 감행했어요.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죠. 그렇다고 일본 팬들과 한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어요. 그게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죠.”
죽음 앞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피아니스트로서의 삶
암 진단이 내려지고 수술이 시급했지만, 그녀는 수술대에 오르길 주저했다. 가슴뿐 아니라 겨드랑이의 림프샘과 어깨 근육, 신경까지 다 절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의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치며, “살아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의사 7명 중 5명이 앞으로 피아노는 못 친다고 했어요. 가족들도 피아노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며 위로했죠. 그런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피아노는 저에게는 숨 쉬는 것과 같은 일상이니까요. 유일하게 매니저만이 저의 뜻을 이해했죠.”
어떻게 해서든 수술을 피하고 싶었다. 대체의학도 수소문을 했고, 이를 위해 독일로 가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완강히 반대했다.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암세포를 걸고 도박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살아야 했고, 피아노를 쳐야 했다. 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의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의사를 만났다. 미국 암센터를 찾아가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원하는 의사를 만나게 됐다. 그의 오랜 팬이기도 한 서울대 노동영 교수였다.
“저에게는 여러 제약이 있었어요. 팔 근육에 이상이 없어야 했고, 가슴도 중요했죠. 암 수술에 가슴 성형까지 하려면 1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더군요. 피아니스트는 암보력이 중요한데 마취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억력이 악화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암을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 했죠.”
그녀는 암의 크기를 최대한 작게 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여덟번이나 받았다. 최대한 암의 크기를 작게 해 수술 부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항암 치료를 받다가 죽는 사람도 여럿 봤어요. 항암 치료가 듣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그런데 저는 항암 치료가 잘 이루어져서 기적적으로 암세포가 거의 다 없어졌어요. 그 상태에서 수술을 했죠.”
노동영 교수는 신경과 근육조직은 모두 남겨두고 암세포만 제거하는 초정밀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에는 디스크나 뇌수술에만 이용하는 ‘신경자극기’(신경을 건드릴 경우 경고를 보내는 장치)도 동원됐다. 수술은 2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하기 전 미국에 있는 열일곱 살, 열네 살 아이들을 아버지에게 부탁했고, 아이들에게 유언도 남겼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손가락부터 움직여보았죠. 다행히 정상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유방암 수술을 하고 나면 팔도 제대로 못 든다고 하던데 저는 바로 다음날 피아노를 칠 수 있었죠.”
의지 하나로 버텨낸 투병 생활
서혜경의 성공적인 투병기는 모든 암 환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아주 특별한 경우다.
그러나 이는 단지 행운의 여신의 미소와 명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피아노를 치겠다는 그녀의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곁에서 한결같이 투병을 도왔던 그녀의 올케 김원선씨가 말한다.
“항암 치료를 하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밥을 먹지 못해요. 그런데 시누이는 항암 치료를 여덟 차례나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평소보다 더 잘 먹었어요. 무슨 입맛이 있겠어요. 다 회복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틴 거죠. 굉장히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잘 참았고요. 보고 있는 사람이 더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의사가 전달하는 주의사항이나 제 이야기를 잘 따랐죠.”
체력이 바닥나면서 우울증도 찾아왔다. 힘든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칠 수 있었던 힘이 투병하면서도 나온 것 같아요. 피아노를 치려면 인내력과 노력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지금도 의사의 지시사항은 절대로 어기지 않고 식생활도 정확하게 지키고 있어요. 곁에서 보면 정말 대단해요.”
옆에 있던 매니저도 거든다.
“1년간 잡혀 있던 스케줄과 계약을 해지했을 때 기분이 어땠겠어요? 그래도 절대 절망하지 않더군요. 그저 암을 이기고 다시 무대에 서겠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녀의 투병 신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80년 동양인 최초로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갑자기 오른팔 근육 마비가 오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사형선고만큼이나 치명적인 증상이었다.
“그때는 무식하게 연습만 했어요. 일단 피아노 앞에 앉으면 새벽 5시까지도 연습을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갑자기 팔에 마비가 온 거예요. 피아노를 5분도 칠 수 없었어요.”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에게 예고도 없이 닥친 불행. 그러나 이때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지압을 받으며 꾸준히 연습 시간을 늘려갔다. 5분이 10분으로, 10분이 30분으로 늘어났다. 다시 예전처럼 피아노를 치기까지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곤 모든 이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다시 뮌헨 콩쿠르 우승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힘든 투병 중에도 서혜경은 경희대와 미국 맨해튼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쉬지 않았다. 비록 학교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경희대 학생들은 집으로 와서 레슨을 받았고, 맨해튼 음대 학생들은 전화로 레슨을 했다.
“맨해튼 음대 학생 중에 박사 학위 코스에 들어가려는 학생이 있었어요. 시험 보기 직전 국제 전화로 레슨을 해줬죠. 식은땀을 흘리면서요. 학생에게는 일생일대 중요한 기회였으니까요. 전화로 학생 연주를 듣고 전화로 지도했죠. 전화기 너머로 학생은 제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연습했고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매니저는 “서혜경씨의 열정은 아무도 못 말린다”며 손을 내저었다.
1년 만에 서는 감격의 무대
힘든 투병 기간을 거쳤지만 어쩐지 서혜경은 예전보다 더 건강한 느낌이었다. 항암 치료로 인해 다 빠져버린 머리는 어느새 보기 좋은 길이로 자라 세련된 느낌을 주었고, 식습관 개선 덕분에 살이 8kg이나 빠져 예전보다 더 젊고 아름다워 보였다.
“다시 태어난 셈이에요. 20대로 돌아온 기분이죠. 살이 빠지니 20대 입었던 옷이 다 맞아요. 여자 삼손이라고 불릴 만큼 긴 머리는 제 트레이드마크였어요. 머리를 자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지난 30년을 살아왔는데, 주변에서 짧은 머리도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연신 편안한 미소를 짓는 서혜경. 삶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사는 게 정말 좋아요. 하루하루 감사하고요. 청계천 물소리, 하늘… 모든 것이 아름답죠.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에요. 지금까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혹사시켜왔거든요. 늘 완벽을 추구하고 살았어요. 2등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죠. 이제는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어요.”
서혜경은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운전면허증을 내밀었다.
“투병을 하면서 그동안 못해본 요리도 배웠고, 운전면허증도 땄어요. 영화도 많이 봤고,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죠.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이제 완쾌된 상태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완치가 되려면 5년, 10년을 두고 봐야 한단다. 이 때문에 식이요법과 운동은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밥은 꼭 세끼 모두 현미밥을 먹고, 반찬은 최소한 담백하게 무염식으로 요리해요. 고기는 전혀 입에 대지 않아요. 다행히 생선을 좋아해서 힘들진 않네요.”
건강을 되찾은 그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역시 무대에 서는 일. 오는 1월 28일 예술의전단 콘서트홀에서 KBS 교향악단과 신년 음악회로 활동을 재기한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지 이제 겨우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태다.
“주변에서는 연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해요. 얼마 전 후배 결혼식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암 치료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라며 놀라더라고요. 물론 이른 감이 있어요. 지금도 일어나면 손이 저리거든요. 그래도 무대에 서는 건 문제없어요.”
그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스트레스. 스트레스는 암 재발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피아니스트는 무대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와 싸워야 하는 직업이다.
“피아니스트는 긴장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물론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감당해내야 하죠. 그래서 요즘은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무대에 설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다들 미쳤다고 하죠. 아프지 않으면 저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1년 전까지는 최고의 연주를 원했다면 이젠 그녀가 꿈꾸는 연주는 바로 최선의 연주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젠 즐기면서 여유롭게 무대에 서고 싶어요. 아무리 힘든 레퍼토리를 연주하더라도 완벽한 경지에서 연주를 즐기고 싶네요.”
이뿐이 아니다. 오는 9월 영국 런던심포니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그동안 미뤄온 공연이나 레코딩 계획이 줄을 서 있다. 무리가 아니냐는 물음에 서혜경은 감기를 앓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대답한다.
“1년 전부터 진행해오던 계획이에요. 단지 1년 늦춰졌을 뿐이죠.”
인생의 끝자락,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가.
그녀의 눈은 이전보다 깊어져 있었다.
레이디경향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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