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유행처럼 시작돼 일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선행바이러스에 전염돼보세요” |
차분한 진행과 맑은 미소로 언제나 시청자에게 편안한 방송을 선사해온 SBS정미선 아나운서가 기부천사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 활동 조건으로 받은 1천만원을 난치병 아이들을 위해 기부한 것. 작년에 이어 두 번째여서 더욱 의미가 깊은 그녀의 선행 이야기. 이제 8개월 차 신혼부부인 그녀의 달콤한 신혼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2년 연속 2천만원 기부, 전달자 입장에서 전해준 것뿐 |
"기부천사"라는 말에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어쩔 줄 몰라 한다. “더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기부천사’라는 이름은 과찬이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2천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정미선 아나운서(29)는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 활동 조건으로 받은 연간 출연료 중 경비를 제외한 1천만원을 SBS-TV 모금 프로그램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과 ‘기아체험 24’에 500만원씩 나누어 기부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500만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나머지 500만원은 월드비전에 기부했어요.
제가 진행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희귀 난치 질환 아이들을 후원하는 파트와 연계돼 있거든요.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그동안 아이들을 보며 늘 가슴이 아팠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연결된 더 강한 끈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월드비전에 전해진 500만원은 우간다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만들어주는 데 쓰인다. 교과서 1세트에 1만5천원. 500만원으로 370명의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적잖게 이상했단다. 작년에는 콩고 어느 마을에 제분기를 지원해 그 마을 경제를 살리기도 했다. 기부를 하면 할수록 몰랐던 세상과 가까워진다.
“지갑 속에 있는 현금을 제외하면 보통 큰돈을 만질 기회가 자주 없잖아요. 제가 부족하지 않게 쓸 돈을 제외하면 통장의 돈은 숫자에 불과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전달자 입장에서 전해준 것뿐이에요.”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진행하며 만나온 아이들이 큰 계기가 됐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해맑게 웃을 줄 아는 아이들을 보며, 큰돈이 생기면 언젠가 아이들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중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로 위촉되며 어렵지 않게 결정하게 됐다.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후원하는 프로그램 성격상 방송에서 아이들이 힘들고 아픈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은 굉장히 밝아요. 몸이 아플 뿐이지 또래의 장난기 많고 밝은 아이들과 똑같거든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되레 제가 배우는 게 많았어요.”
치료를 받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이 있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도 있다.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는 그런 병도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희망을 갖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프고 여린 몸이지만 곧 울창하게 자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아이들이 가진 에너지는 강하다. 가끔 촬영하며 만난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민아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일곱 살이었는데 멋부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었어요. 제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투병 중 임에도 가발에 꽃핀도 꽂고 반겨줬던 예쁜 아이예요. 그 아이가 지난주 하늘나라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크면 얼마나 예뻤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생명의 소중함을 매번 새롭게 느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진행자로서는 물론 한 사람의 이웃으로서 제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방송이에요.”
새벽 5시 반 기상해 추위, 졸음과 싸우는 행복한 일상
2003년 SBS 공채 11기로 입사한 그녀는 어느덧 6년 차 아나운서다. 스스로도 ‘벌써’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그만큼 정신없이 살았다는 의미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2003년 가을에 코스모스 졸업을 하고 바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으니 입사도 유난히 빨랐죠. 이제야 제 자리가 보이는 것 같아요.”
차분하고 단아한 그녀에게 아나운서만큼 어울리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싶지만 사실 그녀는 PD 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방송반에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 PD를 꿈꿨다.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추천으로 아나운서 원서를 낸 것이 덜컥 합격돼 처음엔 겁을 먹기도 했단다.
“요즘같이 몇천 대 1의 경쟁률이었으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웃음). 운 좋게 합격하고 고민도 많이 했어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그때까지 저 역시 많은 사람이 보통 생각하는, 무언가 화려하고 특별할 것이라는 ‘아나운서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그렇게 화려하지도, 드라마에서처럼 시기와 암투가 많은 집단도 아니더라고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서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았죠. 입사할 때 제일 하고 싶었던 방송이 아침 프로그램이었어요. 요즘 아침 방송을 진행하며 새벽 출근이 힘들 때면 그때를 생각해요. 초심을 잃지 말아야죠.”
그녀의 기상 시간은 새벽 5시다. 아침 방송 진행자의 숙명이랄까. 아침 7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출발 모닝와이드’를 진행하는 그녀는 2년 2개월 동안 까만 밤을 밟으면서 출근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두 가지, 추위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는 어느덧 일상이 됐다.
“아침 방송을 하면 좋은 점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꼽을 수 있어요. 밥도 거르지 않고 하루 세끼 챙겨 먹게 되고요. 거의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저녁 10시 반에 자거든요. 출근을 안 하는 휴일에도 새벽 5시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단점도 있지만요(웃음).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하다 보니 몸이 건강해지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왜 군대 가면 살찐다고 하잖아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아침 방송 시작하고 살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10년 만난 첫사랑과 결혼, 함께한 시간만큼 편안한 신혼생활
사실 그녀가 요즘 살이 찐 이유는 규칙적인 생활 탓도 있지만 결혼 후 몸과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결혼해 현재 달콤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두 살 연상의 첫사랑과 10년 만에 결혼에 골인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부부가 처음 만난 건 그녀가 대학교 1학년 때, 기말고사가 끝나고 대성리로 간 조인트 엠티에서였다.
“날짜도 기억해요. 1999년 6월 21일이었어요. 대성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남편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어요. 유난히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얘서 눈에 띄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연락처를 주더라고요. 그렇게 몇 번 만나다 사귀게 됐는데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첫 이성교제였어요. 서로 연애에 서툴다 보니 1년 후에 헤어지게 됐죠. 다시 만난 건 2003년이에요.”
인연이어서 그랬는지 3년 만에 남편의 전화를 받고 ‘어쩌면 이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소박하고 소탈한 성격인데 제가 미리 걱정하고 급한 성격이라면 남편은 낙천적이고 느긋한 스타일이에요. 그러면서도 꼼꼼한 성격이라, 성격은 급한데 얼렁뚱땅 넘어가는 제가 꾸지람을 많이 들어요. 닮은 듯하면서 참 다른,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잘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컸어요.”
두 사람의 성격대로 프러포즈 역시 소박했다.
“결혼 날짜 잡아놓고 한 달 전쯤에 늘 가는 바에서 반지를 주면서 ‘잘 살자’고 하더라고요. 옆에서는 다른 커플이 스크린에 자신들 연애사진 띄우면서 ‘화려한’ 프러포즈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냥 조용하게, 우리 스타일대로 했죠(웃음).”
결혼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연애를 오래해서 그런지 편안해요”라고 답한다.
“결혼 초반에는 남편의 야근이 너무 잦아서 많이 싸웠어요. 결혼 전에는 항상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 집에 혼자 있으려니 너무 쓸쓸하더라고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해서 관용을 베풀죠(웃음). 결혼과 연애는 확실히 달라요. 주말에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서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도 하는 게 좋아요. 마음이 안정돼요. 저는 못 느끼는데 주변에서 편안해졌다고 많이들 그러세요. 인상도 더 부드러워졌고요. 남편도 점점 후덕해지고 있어요.”
자신보다 청소도 빨래도 더 잘하는 남편이 좋은 그녀는 아직도 마트에 가면 이것저것 신기한 아이디어 상품에 눈이 빛나는 사랑스러운 새댁이다.
“기부는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선배들이 농담으로 ‘아나운서계의 김장훈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김장훈씨 따라가려면 전 아직 멀었죠. 기부라는 게 주변에 어느 한 사람이 시작하면 전염병처럼 번져 나가는 것 같아요.
SBS 아나운서실에도 기부 바람이 불어서 각자 책상 위에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 사진이 붙어 있어요. 정성근 선배는 휴가까지 내서 후원아동을 만나러 가기도 하세요. 처음엔 유행처럼 시작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기부가 일상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저는 어쩌다 큰돈이 생겨서 하게 됐지만 큰돈이 아니어도 모이면 커집니다. 기부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주세요.”
요즘엔 후원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 아동의 사진도 볼 수 있고 카드도 쉽게 보낼 수 있다. 쇼핑몰처럼 곰 인형이나 장난감을 골라 후원 아동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나를 위한 쇼핑보다 남을 위한 쇼핑이 때로는 더 즐겁다며 기부를 권하는 그녀에게 다시 ‘기부천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상에 그녀의 미소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천사가 많아지길 바라본다.
레이디경향 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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