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 4세 유도선수이자 K-1에서 활약하는 이종격투기 선수. 이종격투기선수를 그만두면 모델이 되고 싶다는 남자. 부산과 대마도에 다리를 놓고 싶다는 남자. 보기와는 다르게 유머와 센스가 넘치는 추성훈과의 만남.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방인
추성훈이 유도를 시작한 건 세 살 때부터다. 유도선수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1998년 그는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는 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여동생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이후 부산시청에 들어가 유도선수로 활동했으나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일본에선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선 일본에 산다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을 당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유도를 할 수 없어 고민하던 그는 결국 일본 귀화를 선택했다. 4대째 일본에 머물면서 100년 동안 지켜온 한국 국적인데 그것을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한국 생활 3년 만에 일본으로의 귀화를 결심한 그는 일본의 유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2004년 말에는 일본 K-1 다이너마이트에서 종합 격투기 선수로 데뷔했다.
철이 들면서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
조만간에 TV에서 추성훈 선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오는 3월 28일 7시 30분에 방영될 KBS-2TV ‘TV는 사랑을 싣고’의 녹화를 마친 것. 그는 이 방송에서 자신을 한국으로 데려왔던 유정호 유도 감독을 만날 예정이다. 유정호 감독은 지난 1998년 추성훈을 한국에 데려온 주인공이다. 추성훈은 당시 부산시청 감독으로 재직하던 유 감독과 3년 7개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선수 생활을 했다.
유정호 감독은 “추성훈은 처음 봤을 때부터 나중에 큰일을 할 선수로 보였다. 유도 등 운동 능력에서 뛰어난 건 기본, 패션 감각이나 노래 솜씨도 대단해 나중에 가수가 돼 나를 찾아올 줄 알았다”면서 “지금은 유도가 아니라 이종격투기 선수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무척 보기 좋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부산에 머물 당시 유 감독에게 한국어와 애국가 등을 배우며 한국 문화를 몸에 익혔다고 한다. 그는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머물면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지만 그 벽은 너무 높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추성훈은 최근 컴필레이션 앨범 「2008 연가」에 수록될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을 부르기도 했다. 그는 지난번 출연한 공중파 토크쇼에서도 이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됐다. 음반 디렉팅을 맡은 작곡가 조영수는 “방송을 통해 접했던 것보다 훨씬 노래를 잘한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이번 「2008 연가」 출연료 전액을 목포의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할 예정이다.
추성훈은 현재 4월 29일 ‘드림’ 미들급 그랑프리 출전을 위해 일본과 하와이를 오가며 훈련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경기에서 우리에게 또 어떤 ‘추성훈’의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레이디경향 2008년 4월호
'세계속 한국. 한국을 빛낸 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년간의 도전과 열정 한국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 (0) | 2009.07.22 |
---|---|
미(美) 리얼리티 프로그램 최고의 한국계 도전자 빅토리아 홍 (0) | 2009.07.21 |
주한 카타르 대사 부인 나오미 마키의 ‘한국 찬가’ (0) | 2009.07.21 |
유관순 열사 열혈 팬 자처하는 日주부 니시무라 노리코씨 (0) | 2009.07.21 |
호주를 빛낸 150인의 명사에 선정! 국가대표 디자이너 이화숙 (0) | 2009.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