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 한국. 한국을 빛낸 이들

유관순 열사 열혈 팬 자처하는 日주부 니시무라 노리코씨

maind 2009. 7. 21. 03:50

 

 

“한일 관계를 떠나, 평화를 위해 희생을 불사한 정신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최근 들어 활발한 문화 교류로 점점 그 거리를 좁히고는 있지만 아직 풀어야 할 역사적 숙제를 안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복잡 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다. 유관순 열사의 열혈 팬임을 자처하는 일본인 주부가 있어 화제다. 올해로 16년째 한국생활을 하고 있는 니시무라 노리코씨가 그 주인공이다. 3·1절, 광복절이면 한국인들의 따가운 눈총 때문에 바깥출입을 삼가던 그녀가 한국 팬이 된 사연을 들어봤다.


한국에 살며 알게 된 한국의 슬픈 역사,
평화 위해 희생한 유관순 열사에 깊은 감명

 

 

일본인 주부 니시무라 노리코씨(47)가 한국생활을 시작한 건 1993년 남편 니시무라 히로유키씨를 따라 이주해오면서부터다. 유난히 한국에 정이 많았던 남편을 따라 한국 땅을 밟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본보다는 아이들을 키우기에 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뿐이었다.

“일본은 한국보다 성적으로 훨씬 개방적이에요. 이지메(집단 따돌림) 문제도 있고 해서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일본보다 한국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던 중에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됐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3·1절에 집 밖을 나가지도 못했어요(웃음).”

당시만 해도 양국의 문화 교류가 많지 않았던 시기다. 혹시나 사람들이 일본인인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을까 싶어 3·1절이나 광복절에는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혹시 외출을 할 때에는 일본인인 것을 숨기느라 일본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의 일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한층 부드러워진 양국 간의 분위기 덕분이다. 타국에서의 낯선 생활, 모든 게 조심스러웠던 일본인 새댁은 우연히 독립문 근처로 이사하며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와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게 됐다.

“서대문으로 이사를 오면서 독립문은 물론이고 서대문 형무소와 그곳에 얽힌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한국에서 말하는 ‘애국’과 일본의 ‘애국’은 의미가 좀 달라요. 한국 사람들의 가슴에는 기본적으로 애국심이 있잖아요. 일본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지 않아서인지 ‘애국’ 하면 무언가 특별하게 생각해요. ‘애국자’라고 하면 우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본에서는 ‘애국’이 우익의 전유물인 것 같아 거부감이 있었는데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념에서 벗어난 진정한 애국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책과 TV,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유관순 열사를 공부하며 그녀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16세 어린 소녀의 몸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험한 산길을 달려 사람들을 모으고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일본군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의 정신은 세계 평화를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일본에 있을 때는 한국의 슬픈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한국에 와서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됐고 그런 토대 위에서 유관순 열사의 희생과 정신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죠.”

종종 유관순 열사를 ‘한국의 잔 다르크’라고 표현하는데 그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잔 다르크는 전쟁을 위해 싸웠지만 유관순 열사는 평화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일본인인 제가 유관순 열사의 팬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한일 관계를 떠나 평화와 대의를 위해 희생하신 그분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도 나누는 한국인의 정,
한국을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인터뷰 내내 “선조들이 한국에 저지른 일에 대해 미안하다”며 서슴없이 말하는 그녀가 조금은 걱정됐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우리 역사를 이해하고 슬픔에 동감하는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지만 일본인들은 어떻게 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 일본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제 자신이 일본인인 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역사를 이해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동감하는 거니까요. 역사 문제에 관한 한일 갈등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빚어지는 문제가 가장 크죠.”

노리코씨가 생각하기에 한국인은 ‘네 것 내 것 안 따지는 민족’이다. 작은 거 하나도 함께 나누는 한국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 마음 알겠다”라는 진심 어린 사과의 말 한마디만 하면 풀 수 있는 문제를 고집스럽게 안고 있는 일본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는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세대들은 서로의 영화나 음악을 교류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집 밖에서 일본말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1990년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문화센터와 주민센터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그녀는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일본어 개인 과외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역 주민센터에서 일본어 수업을 해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주부님들도 많이 배우러 오세요. 다들 예습도 열심히 해오시고 열정이 대단하세요. 제가 제대로 준비해가지 않으면 안 돼요.”

한국생활 16년 차, 이제 웬만한 한국 주부는 저리가라 할 만큼 한국생활에 익숙한 그녀의 ‘한국 아줌마’ 예찬은 대단하다.

“우선은 저도 목소리 크게 말을 하게 됐어요(웃음). 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주고 싶어해요. 일본에서는 모임에 갈 때 자신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가서 그것만 먹거든요. 한국에서는 작은 거라도 함께 나누려 하고 서로 챙겨주잖아요. 그런 따뜻한 마음이 정말 좋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마늘 냄새와 사람들의 큰 목소리에 놀랐던 일본인 새댁은 이제 순두부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하는 아줌마가 됐다. 3·1절과 광복절, 예의를 갖춰 태극기를 다는 일본인 주부를 신기해하던 한국인들은 이제 이웃사촌을 챙기듯 그녀를 품는다. 자신과 이웃의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한국과 일본 간의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를 희망하는 그녀의 꿈이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레이디경향 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