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스타일(On Style)의 ‘프로젝트 런웨이(Project Runway)’ 시즌 4에는 한국계 디자이너가 참가했다. 빅토리아 홍(34)은 아홉 번째 에피소드에서 탈락했지만, 디자인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탁월한 실력으로 주목받았다.
아름다운 도전의 미학, 빅토리아 홍
지난 1월, 온스타일은 ‘최고의 한국계 해외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를 묻는 설문을 진행했다. 빅토리아 홍(한국명 홍지선)은 51%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빅토리아 홍은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뉴욕 현지에서 자신의 브랜드 나비뉴욕(nabeNY)을 운영하고 있는 실력파 디자이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기 전에는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6년간 기자로 일했다. ‘나비’는 한국어다. 변태를 거듭해 결국은 날아오르는 나비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겠다는 빅토리아의 철학과 의지를 상징한다. 지금은 이탈리아계 남편과 뉴욕에 살고 있다. 다음은 빅토리아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다.
축하한다.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계 중 최고의 도전자로 당신이 뽑혔다. 한국 팬들은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당신의 모습을 좋아했다. 기분이 어떤가?
프로젝트 런웨이가 끝난 후, 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양인이었다. 한국계 미국인 커뮤니티에서도 수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너무 많아 떠내려갈 지경이었다(웃음).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젠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3월 15일에는 애틀랜타에 있는 한국계 미국인 협회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6년간 기자로 일한 후에 파슨스(Parsons)에 입학해 패션을 공부했다. 무엇이 당신을 패션에 빠지게 했나?
난 패션의 마력에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 중 하나다. 헤어날 수 없다. 패션에는 어떤 힘이 있다. 실생활에 유용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하기 때문에, 그 힘은 강력하다. 기사를 쓰는 것과 옷을 만드는 것은 거의 같은 영역이다. ‘글’ 대신 ‘옷’을 수단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게 패션이다.
지난 2월 뉴욕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빅토리아 홍의 브랜드 나비뉴욕(nabe NY) 컬렉션
프로젝트 런웨이에서 어머니에 대해 언급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감은 어떤 것인가.
오빠와 언니가 있다. 우리는 서로 어울리도록 옷을 맞춰 입었다. 그러나 미국 버지니아로 이민 갔을 때는 더 이상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이전에 입던 것만큼 좋은 옷을 구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재봉틀을 구입해 우리 옷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항상 패션에 관심이 있었고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 내가 그런 창의력을 물려받지 않았다면 디자이너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피아노 연주회에서 입었던 꽃무늬 민소매 드레스, 놀 때 주로 입었던 빨간색 바지, 어머니가 직접 짜주신 호박색 니트가 기억에 남는다.
세 살 때 이민 갔다. 이유가 있었나. 한국에서 자랐다면 당신의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나. 남대문이 몇 주 전 전소된 것은 알고 있었나.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아버지는 한국에서 몇 개의 회사를 운영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었다. 부모님은 미국에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은 것 같다.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거다. 일단 경제적으로 더 나은 형편이었을 거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항상 일해야 했다. 그런 경험들이 꿈을 꾸게 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남대문 소식은 이미 들었다. 망연자실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은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해왔다. 너무나 슬픈 소식이었다.
쇼에서, 당신은 이기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언뜻 부정적일 수도 있는 이미지다. 미디어에 비친 당신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프로젝트 런웨이는 정말 리얼하다. 하지만 나는 리얼리티 쇼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 딱 한 번 출연한 것뿐이지만(웃음). 물론 내 안엔 경쟁적인 마음도 있다. 이기고 싶다. 그러나 스토리 라인에 따라 나는 지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동양인으로 비춰졌다.
프로젝트 런웨이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
탈락하기 직전(웃음)! 여덟 번째 에피소드인 아방가르드(Avant Garde) 도전 때, 이 쇼에서 배우고 싶었던 모든 것을 얻었다고 느꼈다. 실망, 좌절은 없었다. 새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다시 일해야 했다. 쇼는 훌륭한 시작이 됐다. 평생 함께할 친구들을 만났고, 매우 가까워진 사람들도 있다.
일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
전엔 꽤나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다. 매일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 ‘`뉴요커’를 세심하게 읽는 편이다. ‘「뉴욕 타임스」’도 즐겨 본다. 패션 잡지는 손에 잡히는 대로 본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햄릿」이다. 고전을 읽는 게 좋다. 액세서리도 만든다. 저녁에 TV 앞에 앉아서 손으로 뭔가 하는 걸 좋아한다. TV를 보면서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은 완벽한 휴식이다(웃음).
뉴욕은 예술적인 영감으로 가득 찬 도시라고들 한다. 당신에게 뉴욕은 어떤 의미인가?
뉴욕의 에너지는 특별하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면 느낄 수 있다. 내 영감을 자극한다. 남편과는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리가 뉴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진 못할 것 같다. 유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유럽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편안한 유로피언 라이프스타일도 매력적이지만, 뉴욕 같은 곳은 없다.
한국 팬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 혹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한다면.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언을 할 수 있다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는 여러 번의 모험을 감행했다. 유럽에 살았고, 패션을 위해서 기자 경력을 포기했고, 프로젝트 런웨이에 참가했다. 내 인생 최고의 결정들이다.
한국인이라면, 이런 삶의 자세가 익숙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한국인은 대담하고 모험을 좋아한다.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총명하고 재치 있다는 사실은 편견이 아니다. “항상 마음의 소리를 들으세요. 마음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는 힘들지만(웃음), 머리가 하는 명쾌한 말만큼이나 중요하니까요”라고 말하고 싶다.
레이디경향 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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